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4.6.21. 토. 합천해인사(팔만대장경판전)

kyeong~ 2014. 7. 11. 01:11

 

팔만대장경에 관한 책을 어릴적에 읽은 적이 있다

강화도에서 바닷물에 목재를 담그었다가 말리고

그리고 유구한 세월동안 목각을 했다는 내용

그 이후에 무심히 잊고 지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 만큼 없었던 내가

막상 팔만 장경판전에 드니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껴야하는지...

아는 것이 아는게 아니다

 

내가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와서

팔만불력을 얻고 가는지

세상의 연은 한이 없고

언제 또다시 이렇게 깊은 연을 얻을 수 있을지

 

금줄을 쳐 놓고 관람객의 접근 막고 있는데서

마음이 답답해져도 오기도 했지만

그 깊이와 중요성만 짐작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늦은 나이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하다.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국보52호)과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국보32호)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고려 고종대에 판각되어 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대장경.

 

국보 제32호.

목판본은 1,516종에 6,815권으로 총 8만 1,258매인데

이 가운데 후대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은 보유판(補遺板)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뒤

1236년(고종 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이 사업은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주관했으며, 제주도·완도·거제도 등에서 나는 자작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나무를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 사용했다.

 이 대장경은 조선 초기까지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해인사로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때 2,000명의 군인들이 호송하고, 5교양종(五敎兩宗)의 승려들이 독경(讀經)했다"라고 한다.

 

이것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관함의 순서는 천자문 순서대로 배열했으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색에 의해서 그 내용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첫째, 인류 최초의 한문대장경인 송나라 관판대장경(官板大藏經)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며,

현재 전하지 않는 거란판대장경(契丹板大藏經)의 내용을 짐작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대승법계무차별론 大乘法界無差別論〉 권1은 어느 대장경에서도 볼 수 없다.

 

둘째, 사전류의 저술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원주림 法苑珠林〉·〈일체경음의 一切經音義〉·〈속일체경음의 續一切經音義〉 등 중요한 전적과

〈대승보살정법경 大乘菩薩正法經〉·〈제법집요경 諸法集要經〉 등 중요한 대승경론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자체(字體)의 예술성이다.

하나의 목판에 대략 가로 23행, 세로 14행으로 310자 내외를 새겼는데 그 정교한 판각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의 명필인 한석봉은 이를 두고 "육필(肉筆)이 아니라 신필(神筆)이다"라고 경탄했다.

 

이 팔만대장경은 뒤에 5차례나 간행·유포되었다는 역사기록이 있는데

고려말에 이색(李穡)이 인출한 대장경 1부가 여주 신륵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까지 왜구들이 빈번하게 침략해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대장경판을 요구했는데

1389~1509년에 83차례나 요구했지만 대부분 거절하고 간혹 인본(印本)을 주었다고 하며,

1410년(태종 10)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관찰사에게 도내에서 생산되는 인경지(印經紙) 267묶음을 해인사로 보내

인경(印經)하도록 명했으며,

세조는 신미(信眉)·수미(守眉)·학열(學悅) 등으로 하여금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인출하여

각 도의 명산 거찰에 나누어 봉안하도록 했으며,

1898년 용악(聳岳)이 4부를 인출하여 통도사·해인사·송광사 등에 1부씩 봉안했다.

고려 중반부터 장경도량(藏經道場)이라는 이름으로 봄·가을에 6, 7일씩 거의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었으며,

현재 해인사에서는 1년에 1번씩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탑 주위를 도는 행사를 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의 특수성은

첫째, 사상적인 것으로 국토가 유린된 상황에서 이 커다란 불사(佛事)를 통해 경전을 수호한 호법적(護法的)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 색인 : 호국신앙).

이규보(李奎報)의 〈군신기고문 君臣祈告文은 이 대장경조조의 사상적 의의를 천명한 글로

몽골을 야만시하고 문화적 긍지를 드러내고 있다.

둘째, 경제적인 것으로 대장경의 역사(役事)에 대한 막대한 경비를 정부가 부담하므로 국

민에 대한 재투자적인 면이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내용적인 것으로 과학적인 배열과 엄격한 자료수집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고려대장경 이후에 편집된 중국판 빙가장경, 일본판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등은 모두 이것을 모본으로 하여 판각된 것이다.

즉 이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한문대장경의 완벽한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동국대학교에서는 팔만대장경의 원본을 영인 축소하여 영인본 47권과

전대장경에 대한 내용·주소(註疏)·번역자·연구서 등을 상술한 해제 색인본 1권을 합쳐서 총 48권을 간행했다.

또한 1967년부터 이 한문본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한글판 대장경을 간행하고 있는데 현재 120권이 출판되었다.→ 고려대장경 , 대장경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발췌)

 

 

 

 

 

 

최고의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제작과정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 민심을 모으고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려고

16년 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팔만대장경을 제작. 팔만대장경은 지금 해인사 장경판전 전경에 보관되어 있다.

남쪽 건물과 북쪽 건물의 창의 크기를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어 통풍이 잘되는 구조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 모래 등을 차례로 넣어 습도를 저절로 조절하도록 하였다.

지금부터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1. 쓸만한 나무를 벌채하여 1년간 그대로 방치한다.

(나무의 뒤틀림, 갈라짐을 에방하기위한 1차조치) 주

목재종류 : 산벗나무 70%, 돌배나무 10%, 동백나무, 단풍나무, 박달나무, 후박나무가 20%

2. 판재로 켜서 소금물에 삶는다( 갈라짐, 벌레예방 2차조치)

3. 그늘에서 자연상태로 2-3년간 건조한다.

4. 폭 24cm로 판을 만들고 양옆에 마구리(구리테두리)를 끼워넣음(손잡이이자 휨을 방지 3차조치)

5. 판하본( 수기대사가 수정, 교정한 경전)을 판재에 풀칠하여 붙임

6. 경판새김 (구양순체)-허드렛일을 하고 판하본을 붙이는 보조원, 행과 행 사이의 넓은 공간을 파내는 초보각수,

획이나 빗침부분를 제외한 글자와 글자 사이를 깎아내는 반 숙련각수,

마지막으로 판하본 그대로 목판에 직접 새기는 장인의 단계 별작 한다.

7. 틀린 글자 수정- 틀린 글자를 口자로 오려내고 다른 나무에 바른 글자를 새겨서 맞추어 넣거나,

틀린 글자의 행이 있는 나머지 부분을 U자형으로 길게 모두 오려내고 로 새긴 행을 너비방향에서 밀어 넣은 방식이다.

8. 옻칠하기

9. 보관

이렇게 팔만대장경 만드는 과정이 크게 9개로 나뉜다.

이것을 팔만번이 다 되도록 반복하니 고려의 정신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해인사 대적광전 뒤쪽으로 돌아가면 찬란한 우리의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판전이 긴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 


 

"수다라장"

대장경 판전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말

'카메라 사용금지'

물론 들어갈 수없어 아쉽지만

우리의 문화유산을 길이길이 보전하기 위한 것이니 밖에서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장경판전은 고려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정면 15칸, 측면 2칸의 두 건물을 두 二자로 나란히 배치,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서고가 있어 전체적으로 口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다라장(修多羅藏) 편액. 

위당 신관호(威堂 申觀浩)선생 글씨

 

 

 

四十年說何曾法 :사십년설하증법-사십년을 설한 말씀 어떤 높은 법문인가?

                                                            六千卷經獨此方 :육천권경독차방-육천권 경전이 오롯이 여기 있네.

 

 

전면에서 치솟아 오르는 통풍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상하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 서로 엇갈리게 설치한 것이 주목할 점.

또한 바닥은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다져 실내 습도 조절에 만전을 기하였다.

 

법보전

 

 

장경판전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그저 이렇게만 보고야 말았다

저 마당 깊숙한 곳에 서서 무구한 세월의 부처님의 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만 나를 인도 했다.

해인사 불력의 연이 여기까지일지라도

부처의 마당을 밟고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으로 평안하다.

 

 

긴세월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통풍구

줌으로 당겨서 내부를 좀더 살펴보고....

 

 

 

또 더 가까이.....

 

장경판전과 담장의 그림이 멋있다.

 

장경판전 옆 감로수

이런 귀하디 귀한 문화유산을 보고 나면 오장육부가 뜨거워진다

지금처럼 날씨라도 뜨거운날이면 더욱 더 심장이 뜨거워진다

이런날...마음과 심장을 식혀가시라..

저 감로수 한 모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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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언제 또 여기 올지는 모르지만

장경판전내의 팔만대장경을 그때도 못 볼지도 모르지만

본다고 해도 내가 그 불력을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아는것이 아는게 아니리라

모르는게.....마음이 가볍다.

 

2014.6.2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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