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포
12월, 바람 낮은 날에 찾아드니
물길 또한 낮네
바짓가랑이 한 단만 접으면 건너갈 섬을 두고
평생 바라보고 선 비룡산
나는 오늘 섬을 건너지 못하고 비룡산이 되어
섬만 바라보네
바람 넘어가는 소리
비를 맞는 소리
진달래 향기를 모를 리 없는 저 섬은
바지 한단 만 접으면 넘어올 강을 넘지 못하네
섬은 섬대로
산은 산대로
낮은 강을 두고 바라만 보네
그래도 "사랑의 산" 전설은 천 년을 이어가겠지.
梁該憬
2014.12.27. 예천 회룡포에서
한해를 보내려니
마음이 무겁다.
고질병처럼 단수를 더해가는 후회와 반성...
가끔 나를 완젼히 버리고 싶기도 하다.
이럴때에 그저 아무데나 훌훌 떠다니는 것이 최고다
사진사이트에서 "회룡포"라는 사진이 눈길을 끈다
경북 예천 용궁면 대은리에 소재하는 마을이다
경북땅에서 학교도 다니고 몇몇 친구가 있어서 낯설지 않게 드나들었지만
예천땅은 낯설다
외갓댁이 있어서 눈에 선한 안동과도 가깝고
친구가 많은 영주와도 가깝지만 예천은 잘 모르겠다
대략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작은 마을이라 부담스럽지도 않고 걷기에도 힘들지 않은듯하다
인천에서 213km를 달려서 만나는 회룡포의 느낌은 어떠한지 달려가보기로 했다.
2014.12.27.토
예천회룡포 醴泉回龍浦 명승 제16호 (2005년 8월 23일)
회룡포는 내성천이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극무늬 형태로 흐르면서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은 곳이며,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분포하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지형 중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어서 명승 제 16호로 지정되었다.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것을 용의 형상에 비유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의성포(義城浦)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하천이 성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의성포라고 하면 의성군에 있는 지명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회룡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룡포는 경주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는 풍양면 청운리 사막마을에 살던 경주김씨의 조상들이 이주해 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도모든 가구가 경주김씨이다. 회룡포를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장안사가 위치하고 있다. 장안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지만 최근에 중수하였다. 하천의 유로를 변경하게 아치형 산 능선은 이를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회룡포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은 회룡대인데, 이는 하천 침식에 의해 깎여진 비룡산의 능선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 곳이 많지 않으며 그 규모 면에서도 회룡포를 능가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감입곡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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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산(189m)트랙킹코스
용주시비-장안사쉽터-장안사-회룡대-봉수대-원산성-범등-용포대-용포마을-제2뿅뿅다리-회룡포-제1뿅뿅다리-용주시비
천천히 5시간 걷는 코스
회룡포 관광안내도
안내도를 보면 회룡포가 두 곳이 있다.
작은 회룡포와 큰 회룡포가 있다.
보통 말하는 회룡포는 작은 회룡포를 말하고, 또 하나의 회룡포는 큰 회룡포를 말한다.
작은 회룡포는 350도를 돌고, 큰 회룡포는 300도 정도 도는 것 같다.
회룡포 주차장 10:30 출발
겨울이지만 바람이 없고 차분한 12월
바닥에 흩어진 낙엽이 잠잠하다
용주시비에서 회룡대까지는 1.5km
원산성까지는 3.7km
걷고 싶은 곳까지 걷거나
무리해서 저 멀리까지 가거나...
끝까지 가보기전까지는 미리 거리를 약속하지 못한다
언제 내 마음이 처음 다짐했던 만큼 걷던가
늘 욕심이 많아서 걷고 또 걷고....
해의 높이를 보며 걸어가는 것이다.
맞은 편에 보이는 비석은 "용주팔경시비"이다.
이 마을 출신 시인 김영락(1831∼1906)이
용주팔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용주팔경시비(龍州八景 詩碑)가 있다.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직함을 받은 만년의 은거 文人이었고
1997년 8월에 회룡포(回龍浦)에 면민들이 시비를 건립했다고하는 龍州(龍宮)八景(용주(용궁)팔경),
용궁면(佣宮面)은 1914년 예천군(醴泉郡)에 통합되기 전까지 용궁군(龍宮郡)이였으며
고려 때는 용주(龍州)로 불렸던 지역이다.
김영락(金榮洛)에 대하여
1831년(순조31)~1906년(광무10).
조선말기 유학자. 자는 원영(元永)이고, 호는 구계 (龜溪)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병불(李秉拂)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솔잎이 바닥을 메운 길을 따라 비룡산 자락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오르기 쉽고
군데 군데 작은 갈림길이 있다
장안사 쉼터
용왕각 옆 장안사 쉽터에는 ....
이런 법구경이 있다
잠시 쉬면서...신령스런 절경앞에서 이런 법구경을 읽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다.
용왕각에서 당겨본 회룡포 마을
경주김씨 집성촌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1km쯤 오르니 장안사 쉽터 "용왕각"에 이르렀다
장안사 아미타대불과 석탑
용왕각
용왕각 옆에는 용바위가 우뚝 서있다.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이 비룡산이며,
승천하여 구름위에 노니는 용의 형상은 용바위에 있다.
長安寺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비룡산(飛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예천군지』에서는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요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곳 국토의 중간인 용 궁 비룡산 장안사이다.
초창주는 신라 경덕왕때(759) 운명조사 이시며,
그 후 고려 명종때의 지도림 화상, 조선 인조 5년(1627) 덕잠대사,
영조 31년(1755) 법림대사 등 고승 대덕들이 주석하시면서 중창하셨다.
근래에는 두타화상(頭咤和尙)이 약관의 나이로 수행정진차 전국을 행각 하던중
사세(寺勢)의 퇴락함을 보고 이곳 지역 신도들과 힘 을 모아 오늘의 가람을 일으켰으니(1984~1992),
이는 불자들의 간절한 원력의 소산이라.
일찌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선생이 장안사에 머무르면서 글을 지었으며,
또한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도한 유서깊은 도량이다.
장안사 범종각
대웅전
동자승이 참 정겹다.
삼성각에 바라본 대웅전
사랑의 산 전설
회룡대에서 바라본 "사랑의 산"
맑지 아니하여 선명하진 않지만
사랑의 산을 당겨서 찍어 보았다.
맨앞 가운데가 "사랑의 산"이다.
사랑의 산이 보이는 비룡산 자락에
수많은 산악회 리본이 펄럭인다
저산을 바라보며 어떤 사랑을 꿈꾸었는지...
산을 사랑하는가
사람을 사랑하는가
가족을 사랑하는가
그러나.....나는 걷기를 꿈꾸며....
회룡포 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회룡대이다
회룡대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오르는 풍경도 보고 싶고
세찬 물살이 휘감아 도는 풍경도 보고 싶고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육지속의 섬 풍경도 보고 싶다.
들판에 아무것도 없다
휘돌아가는 강물에는 물이 말랐다
마을사람도 보이지 않고
모두 겨울잠에 들었는가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때문에 꽁꽁 숨어서 살고 있는지...
굽이 굽이 병풍처럼 둘러 싼 산맥들
가운데 하트산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의 산에 눈길이 간다.
나이가 들어도 그저 사랑하나면 세상 살맛나는 순간이 있다.
마을을 따라 주욱 이어진 둘레길도 보고
깔끔하게 단장된 마을도 눈여겨 보고...
경주김씨 그들만의 공화국인 것 같다.
제1 뿅뿅다리
제2뿅뿅다리
아무리 봐도 아름다워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이 마을을 좀더 오래 볼 수 있는 길을 선택하여 오랫동안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처음에 얼마를 걸을지에 대한 작정은 하지 않는게 좋다.
눈을 떼기 싫은 회룡대에서
다시 한번 뒤돌아 보며...
누군가 쉬었다가 간 자리
그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점심 요기를 한다.
집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사발면이 이리도 맛날수가...
뜨끈한 국물에 김치와 함께 먹는 맛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것 같다.
비룡산 봉수대
비룡산 봉수대에 도착했다.
옛 봉수터에 학계의 고증에 따라 복원한 비룡산 봉수대는 높이 2.7m의 정방형인데,
봉수대 표지판에 적힌 옛 기록에 의하면,
동쪽은 서암산 봉수와
서쪽은 다인의 소이산 봉수와
북쪽은 산양 가불산 봉수와 연락을 담당하는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원산성(圓山城)
비룡산(飛龍山) 등산로를 따라 헬기장과 봉수대를 지나 2㎞정도를 내려가다보면
낙동강(洛東江), 내성천(內城川),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깎아지른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삼국시대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圓山城)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된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된 성(城)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있으며 봉수대(烽燧臺)와 군창지(軍倉址)가 남아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馬韓) 최후의 보루인 이 곳 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한 후 백제(百濟)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상당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三國)이 충돌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원산성은 고구려와 격돌했던 곳으로 추측되기도 하며
일설에는 백제 무녕왕이 용감한 기병 3천명으로 이 성을 공략해 병사들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 편 언덕까지 묻었다 하여 그 언덕을 피묻끝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병사들의 절규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고 해 달읍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원산성에 올라 남쪽을 굽어보면 삼산삼수가 만나는 풍양면 삼강이 한눈에 보인다.
3산이란 팔공산, 일월산, 주흘산을 말하는 곳이고 3수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을
이르는 것으로 낙동강 7백리의 절반이기도 하다.
원산성은 토석혼축성이었지만 돌은 없고 흙으로 되어있으며
등로에 삼각점과 원산성 남문지라는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범등에서 내려와 잠시 망설였다
용포대쪽으로 오르는 산길과 오른쪽으로 가는 평평한 길...
방향감각을 잃었다
산쪽으로 올라야 산을 넘어 회룡포 마을로 갈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른쪽 길로 해서 생태마을을 지나 회룡포로 들어설수 있었다.
산을 오르다보면 항상 계단을 만난다
이마을 계단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계단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보폭을 맞추어 계단을 설계했으면 좋겠다
어떤 계단은 차라리 험한 산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보폭계산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보다 많다.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이뻐서 한 컷 찍었다.
용포대
비룡산에는 전망대가 두 곳이다.
회룡대와 용포대
용포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용포대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용포마을"
감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제2뿅뿅다리
이다리를 건너 회룡포 마을에 들어선다.
물이 구비구비 감아 돌아 나가는 마을 회령포.
이곳에는 공사장에서는 쓰는 구멍이 뿅뿅 난 철판을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로 사용하고 있다.
다리에 구멍이 뿅뿅나서 뿅뿅다리라고도 하고, 걸어갈 때 '뿅뿅'소리가 나서 뿅뿅다리라고도 한다.
어느 가수는 이 뿅뿅다리를 소재로 하여 노래도 부른다고 한다.
회룡포內 마을길
여름에는 맨발로 걸어도 좋겠다
강가의 쉼터..
내린듯 만듯한 눈과
자연스런 스친 무늬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물길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끔 눈길을 주고 ...
마을을 감상하며 걸었던 비룡산 산줄기를 올려다보며
제1뿅뿅다리
공사장 철판다리로 물이 퐁퐁 솟는데서 뿅뿅다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회룡포 마을에서 마을밖으로 나가면서..
마을 밖에서 마을 안쪽으로 바라보며
아침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향하고
갈 곳은 많은데 허락한 시간은 어느새 다 써버렸다.
이렇게 해서 회룡포마을을 돌아보고
지는 해를 아쉬워 하며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하여 석송령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석송령石松靈
예천 천향리 석송령(醴泉 泉香里 石松靈)은
석송령(石松靈)이란 이름을 갖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금내는 소나무 석송령
석송령이 위치한 주변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경북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현재 석송령이 있는 마을을 흐르는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건져서 현재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1930년 마을주민 이수목(李秀睦)이 이 나무에서 영감을 느끼게 되어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 소유 토지 6,600m²를 이 나무에 상속시켜 문서 등기를 마치면서,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고, 세금을 내게 되었다.
매년 정월보름날 새벽에 마을주민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올려 한해의 평안을 비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동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막걸리를 들고 이 나무의 주변을 돌면서 술을 땅에 뿌린다. 소나무는 막걸리의 효과를 얻어 더욱 씩씩하게 자라는 것으로 믿고 있다. 석송령의 소유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소작료를 금융기관에 저축하고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증여한 500만원을 보태어, 해마다 선정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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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둑어둑하다
겨울여행은 이리도 해가 빨리 넘어간다.
석송령이 있는 마을에서 요기를 하고
언제 또 이곳을 방문할지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가는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2014.12.27. 예천 회룡포에서..
혹여 다음에 간다면
코스를 달리하여 이렇게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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