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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농다리-천년을 이어온 돌다리, 28宿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2015.1.10)

kyeong~ 2015. 2. 14. 01:00

 

 

 

중부고속도를 지나다니면서

언뜻 보이는 돌다리가 늘 궁금하였다

흔히 보이는 냇물에 놓여 있는 다리지만

돌다리치곤 규모가 제법 크다는 것을 알고

검색을 통해 귀중한 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천 만뢰산을 다녀오는 길에

들렀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걸어야 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이 알려진탓인가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2015.1.10.토요일

 

 

 

진천 농다리(籠橋)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에 있는 고려전기의 돌다리

 

[개설]

진천농교(鎭川 籠橋)는 진천읍을 관통하는 백사천과 이월면을 적시는 덕산 한천천이 합류해 흐르는 백곡천에 놓인 돌다리이다.

농다리·수월교라고도 하며,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다리라고도 불린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경위]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없다.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부친 김서현 장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놓았다는 설과

구곡리 출신 임연 장군이 고려 후기에 고향인 세금천에 놓았다는 설이 전한다.

『상산지(常山誌)』(1932)에는 “고려 초기에 임 장군이 축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태]

진천농교는 본래는 28수(宿)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3칸이 유실되어 25칸만 남아 있다가, 2008년 8월 15일 충청북도와 진천군이 28칸 전부를 복원하였다.

길이는 93.6m이며 너비는 3.6m, 두께 1.2m, 교각 사이의 폭 80㎝ 정도이다.

 중간에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넓적한 돌을 교각 사이에 하나씩 얹어 과학적이면서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졌다.

 

[현황]
진천농교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2001년부터 매년 여름 농다리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농다리는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복을 받고 소원을 이룰 수 있으며,

아낙네가 건너면 아들을 낳고 노인들은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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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주차장(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601-32)

 

농다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농다리로 걸어가는 길

나그네를 위한 돌의자같기도 한데

상형문자를 닮은 한자가 그려져있다.

 

이것은 동양의 별자리 28숙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천 농다리가 28숙 별자리를 의미하며 만들어졌다는데

1000년전 천체과학에 대한  큰 의미를 새기며 건너가볼 일이다.

 

 

확대하여 찍어보고...

 

 

 

 

한국의 상징 28개의 별자리

 

사람들이 해와 달 그리고 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인데, 이러한 기록들은 고인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와 백제 역시 천문에 관심을 가졌던 기록들이 많이 나와 있다.

 

 별자리는 본래 약 5000년 전 바빌로니아 지력에 살던 사람들이 양떼를 지키면서

밤하늘의 별들의 형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도 BC 3000년경에 이미 43개의 별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천문학은 그리스로 전해져서 별자리 이름에 그리스 신화 속의 신과 영웅, 동물들의 이름이 보태졌다.

 한편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동양에서는 서양의 별자리와 다른 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적도 부근에 28개의 별자리를 만들어 28숙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28숙과 더불어 1464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이 동양과 서양의 별자리가 서로 다르고 학자마다 혼동이 생기자 1922년 국제천문연맹(IAU)에서는

도 상에 12개, 북반구에 28개, 남반구에 48개를 정하여 88개의 별자리를 만들어 공포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별자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28개의 별자리인가.

28개의 별자리를 의미하는

‘이십팔숙(二十八宿)’은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사용되어 온 황도와 천구의 적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28숙’이란 달이 희미하게 모습을 보인 뒤 만월에 이르기까지 1개월간의 운행 경로인 백도상(白道上)에서의 28성좌명(星座名)으로,

하나의 성좌에 날마다 ‘달이 머무른(宿)’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통상 28숙과 3원으로부터 하늘이 3개의 담과 나머지 28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동, 북, 서, 남의 방위에 따라 사방신이 7개씩의 별자리를 주관하며,

각 별자리의 해당 영역에는 또한 여러 별자리들이 속해 있다.

 

 

 28숙은 오행과 길흉화복이 내포되어 있으며,

동방에 각항저방심미기, 북방에 두우여허위실벽, 서방에 규누위묘필자삼, 남방에 정귀류성장익진 등 28개가 자리하고 있다.

 동양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진천농교(진천농다리,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는 다리로, 독특한 모습이 눈에 띈다.

 

 

 고려 고종 때의 무신 임연이 그의 전성기 시절에 고향인 이곳에 다리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체로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진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임이 분명하다.

 농다리는 고려 초기 붉은 음양석을 이용해 축조된 지네 모양의 특이한 구조를 가진 돌다리로 1천여 년의 풍상을 이겨오고 있다.

임장군이 음양을 배합하여 자주빛 돌로 축조하였는데,

상응 28숙에 따라 수문 28칸으로 축조하고 각 칸마다 1개의 돌로 이어 하나의 활이 뻩쳐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오래되어 4칸이 매몰되어 지금은 25칸만 남아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28숙에 따라 수문 28칸으로 축조하고 각 칸마다 1개의 돌로 이어 하나의 활이 뻗쳐 있는 것 같다고 나온다.

 그 구조가 자못 허술해서 장마 물이 넘칠 때면 다리 위로 흘러 거의 몇 길에 이르렀고,

노한 파도와 노한 물결이 그 사이에서 소리를 내었다고 하지만 일찍이 하나의 돌도 달아나지 않았다.

 1개의 흩어져 있는 돌을 포개어 쌓은 것에 불과한데 1천년의 오랜 시간을 지탱하였는데 세상에서 신기하다고 일컫는 것이 당연하다.

 

농다리에 도착하자

농암정 아래 "생거진천"이라는 큰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유래는...>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란 뜻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의 유래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성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래됐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근원에 대한 설이 여전히 분분하다.

'추천석'이라는 이름으로 진천과 용인에 살았다는 동명이인(同名異人)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에서부터

용인으로 시집갔다가 진천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양쪽 아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자

 관가에서 "살아서는 진천서, 돌아가셔서는 용인서 모시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근거 없는 전설일 뿐이다.

 

용인시는 그러나 지극한 효성으로 세종대왕으로부터 효자정문까지 하사받은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 1343-1413) 선생을 주목하고 있다.

충북 진천 출신인 최 선생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한양도성 숭례문과 호남 제일의 문루인 풍남문을 축성했고

지극한 효성과 청렴리의 표상이며 현재 기흥구 공세동 자봉산 기슭에 묻혀 있다.

최 선생의 큰 아들 최사위는 생전에 진천에서 부친을 모셨고

사후에는 부친이 모셔진 용인 자봉산 자락 묘소 아래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그 자리에 묘소를 마련하라"고 유언, 죽어서도 부친을 가까이 모시겠다는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성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친을 모시고자 했던 최씨 가문의 효행심에 근원을 뒀다고 용인지역 학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처음 보는 느낌은 규모가 무척이나 크다

길이가 95미터라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고 크다는 느낌이다.

 

돌다리를 한개씩 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돌을 모아서 교각을 만들고

넓은 돌을 상판으로 놓아서 건너가기 좋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별자리 28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농다리를 돌아보며...

 

 

천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너갔을지...

다리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그동안 홍수도 왔었고

태풍도 왔었겠지만

저 사이사이 흙이 유실되지 않고

다리가 유지 될 수 있었는지

조상들의 지혜를 다시한번 생각하며 건너가보기로 한다.

 

 

일제강점기 때 3칸이 유실되어 25칸만 남아 있다가,

2008년 8월 15일 충청북도와 진천군이 28칸 전부를 복원하였다.

 

길이는 93.6m이며 너비는 3.6m, 두께 1.2m, 교각 사이의 폭 80㎝ 정도이다.

 중간에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넓적한 돌을 교각 사이에 하나씩 얹어 과학적이면서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졌다.

 

 

 

교각아래를 살펴보니

큰 물살이 일때에는 유실될것도 같은데

지금까지 온전히 견디어 온 것이다.

 자연석으로 축대처럼 쌓은 교각은

양쪽 끝을 뾰족하게 하여 물의 마찰을 줄였던 조상의 지혜를 볼 수 있으며

천년 가까운 세우러동안 꾸준히 유지보수하며 사용했다고 하며

농다리는 밟으면 움직인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제법 긴 상판

정교하게 맞물려 움직이지 않는다

 

 

겨울이라 수량이 적은 미호천

겨울이 아니라면

장난스럽게 친구 한 명쯤 강아래로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겠다.

 

저녁무렵의 햇살이 강가에 부서지고 있다.

천년의 햇살과

천년의 돌다리와

천년의 세월이 맞물려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있다.

 

몇개의 돌이 사용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이사이의 흙이 유실되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천년의 돌다리 농다리를 건너면

초평호를 따라 걷는 돌레길이 있다.

주황색 실선을 따라 설렁설렁 걸어서 두어시간이면 충분한 길

 

 

이길이 아름다운 길100선에 들었다는 표지석

 

농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오르면 농암정

직진하여 고개를 넘어가면 초평호가 있다.

 

 

초평호로 넘어가는 고개가 "용고개"

고 고개에 성황당 당나무가 지키고 있다.

 

초평호 선착장

 

 

초평저수지

草坪貯水池

 

관개용으로 미호저수지라고도 한다. 1961년 당시에는 흙 댐으로 완공되었으나,

1984년 콘크리트 중력 댐으로 개수하여 저수량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유역면적 49.94㎢, 만수위 면적 2.58㎢, 총저수량 1,385만 3,200t, 저수지 길이 174m, 높이 19.4m로 군내에서 가장 넓은 저수지이다.

미호천의 상류를 막아 축조했으며, 초평천 등을 비롯한 지류들이 유입한다.

저수지 안에는 수초섬·큰섬 등의 작은 섬들이 있다.

 

전체적으로 굴곡이 심한 'ㄹ'자 형태를 이루고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저수지의 물은 미호평야를 비롯한 일대의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로 공급된다.

진천군에는 초평저수지 외에도 백곡·구암·이월·신척·연곡 저수지들이 축조되어 있어 관개시설이 매우 발달했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낚시터 중의 하나로 붕어·잉어·향어·금잉어·뱀장어 등이 많으며,

겨울철 얼음낚시로도 유명하다.

 저수지의 연안에는 초평 호텔과 테니스 장, 오락실, 음식점 등의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단위의 소풍지로 활용할 수 있다.

진천읍에서 동남쪽으로 13㎞ 정도 떨어져 있으며, 천안 - 괴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저수지를 끼고 지난다.

 

 

 

 

지금은 얼어붙은 호수

단풍이 불게 물드는 계절에 찾아온다면

반영이 참 아룸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지 않은 곳을 빌어

겨울강의 풍경.....약간의 반영을 남겨본다.

 

 

하늘다리

 

생거진천 사거용인으로 유명한 진천

이다리에도 진천의 구호가

이다리에도 ...

 

청소년수련원쪽에서 초평호

왼쪽 호수변 데크길이 초롱길이다.

 

 

얼음모자이크

 

겨울강...

 

 

만뢰산과 보탑사를 돌아보고 집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 옆이라 잠깐이면 둘러볼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제법 걸린다...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데....

 

 

농암정에서 해는지고..

 

 

겨울은 해가 너무 짧다

그래서 가끔은 우울하다

더 많이 걷고...더 볼 것이 많은데

해가 지면 그냥 가야 하잖아....

갈 곳은 많고...

또 올 수 있을까?

 

 

저기 고속도를 따라 집으로...

 

농암정에서 바라본 초평호

 

미호천과 중부고속도로

 

농암정을 내려오며 바라본 농다리

일명 "지네다리"라고 하는데 모양이 지네를 닮기는 했다.

 

 

해는 지는데 아직도 탐방객이 많다.

아마도 나처럼 중부고속도로를 오가며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농암정에서 내려다 보면 

농다리 옆에 징검다리가 하나 더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보는 사람들...

 

새로 만든티가 난다..

돌에서 연륜을 알수있으니까...

 

농다리과 초펴호 수변을따라 걸어보는 2시간 남짓의 거리

좋은 사람과 타박타박 손잡고 걷기 좋은길...

가을에 단풍이 호숫가에 내려앉을때...꼭 오고 싶은 곳이다.

누구의 손을 잡고 올까?

 

2015.1.1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