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서
높은 곳에서
먼 곳까지 이어지는 겹겹의 능선에 취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보거나
기대를 하며 산에 오른다
겨울 칼바람보다 더 센 힘으로 올라
발아래로 굽이치는 산하
가장 큰 우주를 만난 것같이 세상을 바라보리라.
덕유가 안갯속에 갇혔다
그뿐만 아니라 덕유를 오른 자도 갇혔다
덕유가 세상 속에 갇혀 지내고
세상이 안개에 갇혀 있고
애초부터 안개가 내 안에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고지의 덕유에 올라
세상 속으로 탈출하고자 했지만
안개는 집요하게 덕유를 감금하고
나는 안개를 방류하지 못한다
인간은 안개를 지니고 살기 때문인가
갈 길을 모르겠다
길은 산에 갇히고
산은 안개에 갇혀있고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안개 때문에.
梁該憬
2015.2.15. 남덕유산에서
2015.2.15. 일요일 흐림
영각사 입구-남덕유-월성치-황점(약5시간)
해피61산악회
덕유산하면
항상 겨울에 가야하고
그리고 눈이 있을거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그 곳에 갈 때마다 겨울이었고
매서운바람과 눈꽃이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영각사 초입부터
지난 가을에 남긴 흔적처럼
낙엽과 울퉁불퉁한 돌들이 그대로 모두 드러나있다
얼마걷지않아 등에는 땀이 흐르고
바람을 대비해 두툼하게 입고 간 옷을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다.
능선에 이르자 그 아스라하게 보이던 능선들은 어디로 가고
안갯속에 갇혀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정상에 오르면 보고자 했던 구비구비 멀어지는 산하는 눈을 감은듯 보이지않고
산속에 갇힌듯 멍해진다.
힘들여 오른 정상에서 그저 여기까지 왔었노라
표지석에 손을 얹어보고는
아니왔던 것처럼 그냥 내려간다.
우주속에 이름 없는 한개의 점인 내가
어찌 덕유의 하늘을 알 수 있으리오
덕유의 풍광을 다 안다고 말 할 수 있으리오.
그러고보니 그냥 왔다가는 것만도 어딘데....
겨울이면 쌓여있어야 할 눈은 모두 어디로 가고...삭막한 덕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좀더 높이 오르자 희끗한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스멀스멀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차길 철계단
날씨가 너무 포근하다
그래서 등이 땀이나고 힘들다.
바위와 어우러져있는 진달래나무
멀지않아 꽃이피면 이쁘겠다.
산은 높아갈수록 안개는 점점 짙어오고
천지가 구분이 안된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자 여기까지 왔지만
안개천국....보이는 것이 없다.
안갯속을 걷다
무색의 안개가 나를 산속에 가두었다
바람처럼 요란하게 오거나
햇빛처럼 찬란하게 오거나
눈처럼 날아서 오는것도 아니면서
조용하게 나를 산속에 가두었다.
내가 갇혀 있고
나무가 갇혀 있고
생각은 비어 간다
안개를 닮아가는 것이다
갇혀지낸다는 것은
모든 생각을 잃어버리는 것임을 이제사 알게 된다.
그랬구나
내가 산을 오르고
길을 걷고자 노력을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갇혀있는 무색의 인간이 아니길 원하는 몸짓이었구나.
몽환의 세계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멍하게 걷는동안
정상의 표지석에 도착했다.
여기가 남덕유산 1507미터
그렇지만 그를 위한 배경은 아무것도 없다
홀로 덕유임을 ....
보이는 것도 없고
어느길을 가야할지 모르지만
더 머물러야할 이유가 없으니까 서둘러 내려간다.
날이 맑으면 저 삿갓봉을 넘으면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월성치에서 월성계곡을 따라 황점으로 내려간다.
찬란했던 순백의 겨울도 이제 빛을 잃어간다.
영원히 아름다운 빛깔은 없나보다
월성재...
월성계곡으로 내려간다.
여기저기 한 번 더 둘러보고...
멀리 삿갓봉의 아련한 모습만...바라보며
덕유의 산 아래로 내려간다
산 아래는 눈이 반은 녹아있다
힘없이 누워있는 눈...
마치 패잔병같이.
영원히 아름다운 것도 없고
영원히 영화를 누리는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내가 집으로 다시 가야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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