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해외여행-아시아/중국

2017.6.15~18, 백두산-서파편

kyeong~ 2017. 6. 16. 00:59

 

 

 

2017.6.16. 금요일 (두번째날)~

 

백두산

 높이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과 국경을 이룬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이다. <BR>백두산의 중앙부에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회백색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 7개는 중국에 속하며, 3개는 국경에 걸쳐 있다.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 주변에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중국 연태공항에서 연길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찍은 백두산

 

 

스마트폰으로 찍은 백두산 항공사진

백두산 이름 변천사

불함산

중국 전국 시기(기원전 475~221)서한 시기 초(기원전 206~23)동진 16국 시기(317~439)

진서통전(晋書通典)에서는 백두산을 불함산이라 기록하였다. 전국과 서한 초년의 지리서 산해경숙신은 불함산 북쪽에서 살고 있다.”고 했고 또한 대황 가운데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불함산이고 숙신국에 있다.”고 하였다. 불함산(不咸山)이란 신무조화를 부리는 흰산이라는 의미이다. “大荒之中有山(대황지중유산), 名曰不咸(명왈불함), 有肅愼氏之國(유숙신씨지국)”의 의미는 2,000년 전 백두산이 흰 부석을 분출하여 화산 위에 쌓여 희고, 주위의 흰 부석사막 가운데 조화를 부리는(화산 분출) 흰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불함산이고 숙신국에 있다는 것이다.

 단단대령

서한 시기에는 백두산을 단단대령이라고 하였고, 중국 고금지명사전에서도 단단대령이라고 하고 있다.

단단희다는 뜻이고, 대령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백산

동한시기(202~220) 한서에는 압록강이 백산에서 발원한다’, ‘수현성이 마갈 백산부를 관할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금나라 시기 고려전에는 고숙신 땅에 산이 있는데, 이름은 백산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백산은 산이 희다는 뜻이다.

  개마대산

고구려 시기에 고구려 경내에 백두산이 있었고 이를 개마대산이라고 하였다.

한위(漢魏) 220~265년 고구려 초기에는 개마대산 아래에 개마국이 있었다.

후한서(后漢書)동옥저전에서는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개마대산은 여진족 언어로 흰 큰 산이라는 뜻이다. 당시 개마대산은 백두산과 그 일대의 총칭이었다.

  도태산

후한서에서는 나라 안에 도태산이 있다고 하였다. ()나라 말로 태백산은 방언이다.

도태산(徒太山)은 태백산 전기의 이름이다. 문헌들에서 사태산(徙太山), 종태산(從太山)이라고 하는 이름들은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북위(北魏)에서는 도태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남북조 420~581년에도 백두산을 도태산이라고 하였다.

  태백산

후위(后魏), 당조(618~923), 발해 신당서(新唐書)흑수말갈전에서는 백두산을 태백산이라고 하였다.

粟末部居最南低 太白山 赤日徒太山与高麗接(속말부거최남저 태백산 적일도태산여고려접,

속말부는 태백산 남쪽 아래에 있는데, 태백산은 또한 도태산이라고 하며 고려에 접하여 있다)”이라고 하였다.

발해 시기에는 태백산, 조선 삼국사기, 고려 때 태백산이라고 하였다. ‘()’매우란 뜻으로, 따라서 태백산은 매우 흰 산이란 의미이다.

영응산

금나라 여진족들은 백두산을 영응산(靈應山)이라고 칭하였다(1172). 이 이름은 잠시만 사용되었다.

 대백산

청나라, 조선, 1880년대에는 대백산이라고 하였다. 이 이름 역시 잠깐 동안만 사용되었다.

 장백산

요나라 926~1115년 거란 국지에서는 장백산이라고 하였고, 백관지에서는 1012년에 장백산 30부여직(長白山三十部女直)’이라고 하였다.금나라(1115~1234) 금사 고려사(金史高麗史)에서는 고숙신 땅에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백산이고, 백산은 장백산으로 금나라에 있다.”고 하였다. 원나라 원통지에도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기재하였다. 이러한 기재들이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산맥과 주봉의 이름으로 통용한 일지양명(一地兩名)론의 개념이다.청나라(1644~1911) 초기에는 장백산이라는 불명확한 이름을 산맥과 주봉 이름으로 함께 사용하여 일명양지(一名兩地)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대청통일지에서 장백산은 산맥 이름으로 되어 있다. 한풍 시기 중국제일지도에 장백산맥 이름으로 일명일지로 명확한 산맥 개념으로 되었다.” 중화민국, 만주국, 중화인민공화국 지도에는 명확하게 장백산맥이라고 명명되었다. 북한도 장백산을 산맥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지리, 지질, 세계지리에서도 장백산을 산맥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지도는 1998년부터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백두산 천지 장백산 천지로 했고, 장백산맥과 주봉도 장백산이라는 일명양지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나라 함풍 이후에는 장백산맥의 주봉 이름이 백두산이었다. 현재 중국 지리학, 지질학에서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산맥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백두산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백두산은 산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장백산의 주봉 개념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신라 신문왕(681~691) 시기에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이후 고려 시대(917~1391), 조선왕조 세종 시기(1419~1455)에도 백두산에 관한 기록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목극등이 17125월에 백두산에 올라갔다고 하였다.

청나라 중기부터 중국도 백두산이라고 불렀고, 청나라 함풍 시기부터는 청나라의 국가 지도를 제작할 때에도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하였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틀리게 부르고 있다.

중화민국, 만주국,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한국, 일본 등은 모두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한다.

중국과 북한의 지리, 지질과학계에서는 장백산맥의 주봉을 백두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 백두산 국경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확정되었다.

백두산은 장백산맥 주봉의 이름으로서 1,320년간 이어져 온,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지명이다.

그 밖에 백두산의 다른 이름으로는 노백산, 태말산, 웅심산, 대백산, 조산, 천신산, 천성산, 성산, 백산백자, 거얼민상경(만주어),

대백태산, 태산, 수백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은 대개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날 이도백하에서 송강하 까지 1시간30분소요

장백산(백두산) 서파주자창이다

하늘이 보니 날씨가 맑다

가이드왈

하루에도 백두번 변해서 백두산이라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운이 좋은가보다 이 맑은 날에 백두산과 마주하게 된다.

 

서파 산문통과후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37호비주차장까지 다시 30분 이동해야 한다.

 

 

서파주차장 풍경

노백산원시생태풍경구

노백산?

 

백두산의 다른 이름으로는 노백산, 태말산, 웅심산, 대백산 조산, 천신산, 천성산, 성산, 백산백자, 거얼민상경(만주어)

대백태산, 태산 수백산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이러한 이름들은 대게 사용하지 않는다.

 

 

서파산문 통과 입장권

 

 

서파 산문 통과모습

 

 

서파산문 통과후 셔틀버스주차장으로 걸어서 이동

 

 

표가 2장이다 헷갈린다

버스탈때 썼던 표인것 같다.

 

 

한국에선 백두산

중국에서는 장백산

흰백(白)자가 눈뿐만 아니라 자작나무에서도 온듯하다

백두산으로 가는 내내 자작나무 숲이 울창하다

한국에서 산마다 가득하던 소나무숲과는 달리 백두산은 온천지가 하얀 자작나무숲이다.

 

 

검표구...셔틀버스 타는 곳

성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제법 많다.

 

 

송강하에서 37호비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백두산

화산재가 가득한 산봉우리다

아직도 눈이 녹지않아 군데군데 희끗희끗하다.

 

 

오지의 오래된 자작나무 숲

내리고 싶다

저 자작나무숲의 오래된 풍경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다.

버스는 달리고 숲은 자꾸 밀려나간다.

 

 

굽이 굽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반겨주는 자작나무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숲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 눈이 녹고 있는 중이라 야생화는 피지 않았고 자작나무 연초록 숲이 자꾸만 마음을 흔든다.

 

 

만만디다..

저절로 가슴이 넓어진다

저끝까지 멀어서 바다처럼 느껴지는 광야다

아직 꽃은 필줄 모르고 자작나무 하얀 등걸이 손짓한다.

 

 

우리나라 산처럼 급하게 오르고 험하게 오르는 곳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오르는 그러나 그 높이가 만만치 않은 백두산 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보기 힘든 복주머니란 같기도 하고

비비추잎같기도 하고 차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이라 잘 모르겠다.

 

 

올라갈수록 민둥산이다

아직 덜 깼다.

그들의 겨울은 길고 길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한여름이라야 그들의 제모습을 보여주기때문에

산악인들은 백두산에 오르는 것이 늘 급하다.

 

 

분명 우리의 백두산임에 불구하고 화산재가 그대로 쌓여있는듯 거뭇한 민머리 백두산 풍경이 이국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나에겐 길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래서 길이 있는 풍경을 찍기를 좋아한다.

쉬엄쉬엄 오르는 버스의 차창밖으로 보이는 길을 급하게 찍어본다.

촛점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소중한 순간의 길을 자꾸만 남겨본다.

 

 

중국의 길은 급하게 오르지 않는다

이리저리 굽이돌아 여유롭게 오른다.

첫날부터 느낀점이 결코 서두루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37호경계비 주차장이다

여기서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그래도 몇시간의 산행을 해야 오를수 있근 우리나라산보다는 편하게 천지를 볼수 있다.

혹여 산정상 부근에는 흐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천운이다....날씨가 화창하다.

 

 

한그루의 나무도 없고 민머리 백두산이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제 저 계단만 올라가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천지를 보는 것이다.

 

똑같은 하늘아래 있는 백두산의 땅

그곳에도 어느땅은 눈이 있고 어느땅은 풀이 돋고...

 

저 곳을 마구 뛰어 오르고 싶지만

타지의 나라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조심스레 백두산의 땅을 밟고 가는 순간이다.

 

 

하늘은 비교적 맑고

산에 눈은 덜 녹았지만 오전의 날씨가 푸근하다.

석재계단과 목재계단 두줄의 계단이 있는데 석재계단은 내려오는 계단이다.

 

 

하늘이 맑기를

비가 오지 않기를

제발 천지까지 무사히 올 수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가

천지로 오르는 계단에서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백두산의 발끝을 내려다 본다

작은 것 하나 멀리보이는 풍경마져도 내게는 소중한 기록물이다.

 

 

부지런히 천지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사람들

오전 10시경 아직은 오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멀리 산의 저 끝은 푸른 바다와도 같은 곳이다.

우주의 먼곳은 언제나 푸른색

푸른색은 꿈의 색깔과도 같다.

 

 

헉~ 왠일이야

눈이 패잔병같이 다 녹아가는 줄 알았더니

이 눈의 두께는 뭐야...

이곳의 6월 중순의 눈의 두께이다.

너무 깊은 겨울을 지나온탓에

깨어나기 그다지도 힘든 땅이었던가

어쩌면 겨울이 휴식의 시간이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 마중을 하느라 차라리 겨울이 휴식의 시간이다.

 

 

누구든 어느곳을 보아도

발걸음 옮기기 힘들다.

모두다 담기위해 몇걸음마다 쉬어가는 것이다.

 

 

중간 중간 비나 눈이나 바람이 불때 쉬어갈수 있는 대피소가 계단 중간에 두군데 설치되어 있다.

삼분이 일 지점이다.

500개 정도의 계단을 올랐나보다.

 

 

 

대피소같은 계단

변화무쌍한 날씨때문에 비를 피할수 있는 지붕있는 계단이 설치되어있다.

 

 

나의 젊은 날...

저렇게 다정하게 산을 오를줄 몰랐다.

내가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저들은 정답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부러운 것은 풍경이 되었다.

 

 

앞으로 한번 올려다보고 뒤로 한번 내려다보고

1442개의 계단은 위와 아래를 저울질하며 자꾸만 번갈아 바라보게 한다.

한라산을 오르는듯한 풍경이다.

 

 

맨땅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그냥 쓸려내려갈것 같은 곳이다.

어쩌면 이리도 나무한그루 없는지

야생화라도 풀꽃이라도 좀 피어 있지..

황량한 벌판같은 대지에

그래도 우리는 산악인의 동경이 되어 이곳을 오기 위한 꿈을 여러번 꾸며 살아왔다.

 

 

바람에 휘청일 것 같은 철탑도 있고

우루루 쏟아질것 같은 돌산도 있고

저 끝에 오르면 좋겠건만

저기는 오르지 못하나보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발 2470미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이 2744미터라고 배웠었는데

대략 300미터 아래 지점인것 같다.

 

 

계단이 1442개라는 인증샷

계단에 번호를 매겨두었다

몇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지 세어보는 맛~

 

먼길을 달려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경계비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많은 사람들

국경인 만큼 cctv가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 5호경계비였다

이름이 바뀌었다.

 

백두산 37호 경계비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이다

한쪽은 중국말 또 한쪽은 한국말...

분단의 땅

남의 나라를 돌아서 경계석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애국자는 아니어도 마음이 아리다.

 

한쪽은 한국땅

국경에서 자유롭게 이쪽 저쪽을 찍을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광폭 카메라가 아니라서

이쪽 저쪽 여러곳을 찍지만 전체화면에 한꺼번에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이다.

 

《천지모습》

천지天池

 

함경북도 혜산군, 중국 동북 지방 지린 성


호수면 해발 2,190m, 면적 9.165㎢,

둘레 14.4㎞, 평균너비 1.975㎞,

최대너비 3.550㎞, 평균수심 213.3m, 최대깊이 384m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백두산 화구가 함몰된 후 융설수·우수 등이 고여 생긴 칼데라 호로,
분화구의 전체면적 가운데 천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6%에 이른다.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을 비롯해 망천후(2,712m)·백운봉(2,691m)·청석봉(2,662m) 등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예로부터 대택·대지·달문지라고도 했으며, 99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가 560m에 이르는 절벽으로 된 화구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호수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하여 흘러내려 비룡폭포(68m), 창바이 폭포[長白瀑布:70m]를 이루면서

쑹화 강[松花江]의 상류인 만주의 얼다오바이허 강[二道白河]으로 흘러간다.

달문을 통해 유출되는 양은 1일 약 36만㎥(7월)에 이른다.

 표면수온은 7월에 9.4℃, 내부수온은 연중 4℃이다.

물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약 3m의 두께로 어는데 그 위에 쌓이는 눈의 두께까지 합하면 6m 이상 된다.
천지 일대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며,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온다. 연강수량은 1,500㎜이며,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수면 위로 최대 1~1.5m의 파고가 일기도 한다.

물이 맑고 푸른빛을 띠므로 가을에는 물 속을 14m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호수는 수온이 낮아 어류가 서식하지 않고, 식물성 부유생물 5종(種), 작은 동물 및 곤충류 4종, 이끼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호수 주변에는 만병초·좀참꽃을 비롯한 12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북쪽 기슭에는 지름이 50㎝ 이상 되는 온천이 3개 있으며, 그보다 규모가 작은 것도 수십 개 있는데 황화수소, 탄산 가스 등이 함유되어 있다.

사계절 경관이 뛰어나며, 백두산 관광의 핵심이 되고 있다.

[Daum백과] 내용 발췌

 

 

화산이 폭팔한 칼데라에 고인 물

수심이 200미터 넘은 깊은 호수

그 깊은 호수가 아직도 꽁꽁 얼어있다

해빙할 준비를 위해 서서히 녹아가고 있는 중이다.

 

 

금방이라도 내려가서 손을 담그어보고픈 곳이다.

북파와 달리 사면이 완만하다

 

 

금방이라도 화산재가 쏟아져 내려 호수의 물이 넘쳐버릴것만 같다.

 

 

저기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가고 싶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것 같다.

예전에는 저기 봉우리를 타고 북파까지 종주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오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오늘같이 따듯한 날

저 눈이 다 녹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유월을 달리고 있다.

 

유월의 보는 눈이라...해빙의 유월, 백두산에서 타국의 느낌을 얻는 중이다.

 

 

광각렌즈가 아닌탓에 전체를 찍지 못하고

오른쪽 왼쪽 가운데...카메라를 옮겨가며 열심히 담아본다.

 

 

 

 

내나라산 백두산

그러나 중국어로 된 안내판.

한국어 깃발까지도 용납하지 않는 중국땅.

왜 내가 이 거금을 내고 내나라땅을 건너다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찍어보다 호수를 다 담아내지 못하겠다

이참에 카메라를 다시 사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카메라를 다시 사면 거기에 빠져 다른일을 못할텐데...

미쳐버리는 성격때문에 어떤것을 새로하고자 할때에는 항상 망설인다.

 

 

 

어쩌면 이리도 풀한포기 없는 산 능선인지

이렇게 긴 세월동안 풀한포기 길러내기 힘든 땅이었는지

 

  

 

천지에 대한 안내판

 

 

다음 코스를 위해 이제는 하산을 해야하는 시간

줄지어가는 관광객의 풍경이 백두산과 어울려 아름답다.

 

 

아무리 내려보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대 초원

한라산의 느낌을 많이 닮았다

분화구 아래 펼쳐지는 넓은 초지....비슷한 생태를 가졌으리라.

 

 

 

작은 설치물하나라도 풍경이 되는 시간

이렇게 하나라도 잊을까 보이는 것마다 남겨두는 것이다.

 

 

올라오는 길도 천천히 올라왔지만

급하게 내려가는 사람도 없다

지금도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7.8월 성수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붐빌까

 

 

가다말고 다시 한번 돌아보는 백두산의 봉우리

 

 

나처럼 돌아서 가기 싫은 사람들

그래서 멈추어 시간을 보낸다.

봉우리라고는 보이지 않는 대 광야의 품에 멈추어 있는 것이다.

 

 

패잔병처럼 힘을 잃은 잔설들

올라올때 바라보았던 풍경이 다시 돌아서 가면서 보려니 더욱 아쉽고 더욱 멋지다.

 

 

조금가서 한컷 또 조금가서 한컷....

예전 필름카메라였으면 필름값이 제법 나오겟다.

 

 

인력거...15만원이란다.

힘든자들은 저걸 타고 올라도 되겠다.

 

 

37호 산문주차장

꽤 많은 버스들이 관광객을 연신 나르고 있다.

 

 

여기에 야생화가 피면 얼마나 환상적인 천국같은 땅이 될까...

야생화가 피지 않아서 많이 아쉽다.

 

 

길은 이리돌고 저리 돌고

바로 오르지 않고 숨고르리글 하며 돌아돌아 백두산으로 오르고 있다.

 

 

 

버스를 타고 하산하는 길

창문으로 비치는 길을 찍어보았다.

어쩌면 저리도 굽이돌아갔을까

아흔아홉구비가 아니라 구백구십구구비라해야겠다.

 

 

자작나무숲을 지나는 길

 

 

저길로 가면 바다로 풍덩빠질것만 같은 길

 

 

복주머니란이 꽃은 피지 않았지만 초록이 싱그럽다.

 

싱그러움을 질러서 달리고 있는 길

 

 

자작나무숲과 복주머니란의 조화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무너지고 그래도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라...편하게 다가서는 풍경이다.

 

 

아까 올때 보았던 언덕위의 자작나무

 

굵거 울창한 나무가 없다.

전부 키작은 나무뿐이다.

키가작고 호리호리한 나무들...

 

그리고 저기 백두산의 능선이 삐죽이 올라와 있다.

 

 

위에서 볼때에는 둘레가 그다지 크지 않은듯했는데 밑에서보니 산줄기가 제법 길다.

 

 

 

백두산 내의 식사다

비빔밥과 부페 두가지다

 

나는 비빔밥을 먹었다

싱싱한 야채에 한국에서 먹으나 별반차이가 없다.

 

 

뜨거운 태양아래 부페

변질될까 약간은 걱정스럽다.

혹여 이글을 보는 이들은요 부페식보다 비빕밥이 좀더 맛있어요...참고 하세요

 

 

 

백두산을 오르내리는 버스들

버스의 숫자를 셀수없을 만큼 많다.

백두산을 찾는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케 하는 순간이다.

 

 

장백산 서파주차장의 모습...

그리도 그리고

그리도 오고 싶었던 백두산

하늘이 맑기를 얼마나 기대했었던가

하늘은 내편이다.

운좋게 맑은 하늘아래 기분좋게 백두산 서파 구경을 마쳤다.

 

 

기분좋은 김에 중국 나리꽃 한송이...내게 선물하듯 올려놓고.....하하....

 

오후에는 금강대협곡으로 트래킹을 갑니다.

3편 금강대협곡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