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사유 (정선 하늘길) 꽃에 대한 사유 가는 걸음 붙잡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던 그 얼굴은 어디로 갔는가 소리 없이 웃어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그 시절은 어디에 있는가 천 년을 아니 잊을 것처럼 서리서리 묻었던 향내는 그대로인데 찬바람이 불기도 전에 또 어디로 떠나갔는지 나는 그대의 시간에 멈추었..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절벽에서 (군산 선유도) 절벽에서 길 끝을 모르는 나는 겁 없이 길을 간다 삶에 관해 결정된 의미가 없는 나는 오늘도 절벽을 오른다 섬과 섬 사이에 길이 놓이고 절벽의 끝에서 우주를 만난다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라는 꿈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없었던 길이 쉼없이 놓이고 우주를 만날 때마다 절벽은 갈 곳을 ..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집착보다야( 계룡산) 집착보다야 덕항산에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계룡산으로 간단다 비가 오고 출입금지가 있고 그래서 계룡산에 간단다 아무려면 어때 비에 젖은 슬픈 산보다야 기세 좋은 계룡산이 좋지 계룡산이 토해낸 모난돌을 밟으며 산을 오른다 거친 등에 박혀있기 불편하여 산을 내려오고 있다 어쭙..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출입금지의 해탈 (추암촛대바위) 출입금지의 해탈 산악회에서 엄니가 사는 뒷산을 간단다 잘 아니까 가기 싫다는 생각과 잘 아니까 가야겠다는 생각이 뒤엉켜 다투는 시간은 일주일 정 붙은 곳으로 마음은 이미 달려간다 많은 사람과 많은 비와 찾은 무릉계곡 '출입금지' 명령이다 비를 너무 많이 이끌고 온 탓이다 출입..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일출사색 (포항 월포바닷가에서) 일출사색 애벌레처럼 웅크리다 밤의 껍질을 벗고 나니 마침 월포바닷가에서도 태양이 껍질을 벗는 중이다 태양은 왜 맨날 붉은 것인가 바닷물이 들거나 풀물이 들거나 모래밭을 뒹구는 동안 곰보 자국이 나거나 그렇지만 관념의 해는 늘 붉고 둥글다 껍질을 벗는 것이 아니라 껍질이라..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산딸기(문경 선유동천에서) 산딸기 둥근 것은 모두 지구다 지구에는 길이 있고 나무가 산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돌며 풍경을 그린다 나는 날마다 두 개의 지구를 굴리며 한없이 길을 떠난다 둥근 내눈을 빌려 푸른 잎이 태양을 가리고 숲 속의 나무 그림자처럼 긴 길을 따라 둥근 것을 굴리며 잠을 설친다 오늘도 내 ..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오월에는 (문경 황장산에서) 오월에는 언젠가 산정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오월이 있었지요. 나만큼 오월을 좋아하다 못해 바람 속으로 뛰어든 철쭉꽃 무리를 만났습니다. 철쭉이 뚝뚝 떨어져 있는 길을 걷노라니 오월에 떠난다는 것은, 길을 간다는 것은, 사랑보다 아름답고 젊은날의 말보다 더 푸르..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찔레꽃 꿈(칠갑산에서) 찔레꽃 꿈 눈에 익을 대로 익어서 무덤 사이를 지나는 것 같이 편안한 길 나무계단을 지나 한 자 폭의 길을 걷자니 취한 듯 흐려지는 발걸음은 장배기를 넘고 또 넘는 달 같다. 달빛이 쏟아 내는 찔레꽃밭 하얀 성에 갇혀버렸네 소매 밑 하얀 살이 설탕처럼 녹아내릴 때 줄기를 더듬고 예..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풍경은 분주하다 (구담봉에서) 풍경은 분주하다 유릿가루 같이 부서지는 햇빛을 마시고 강처럼 달리는 바람 햇빛의 날카로운 면은 새순을 끌어 올린다 사람들이라도 오는 날이면 봄은 진달래를 그리느라 바쁘다 그러고 보니 봄은 강하다 두꺼웠던 겨울을 걷어내고 종잇장처럼 얇은 꽃잎을 밤을 새워 접고 있다 실핏줄..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
진달래에 의존하여( 진도 조도) 진달래에 의존하여 세월 가는 것이 두렵다 보니 겨울을 그냥 잡고 있다 삼월이면 바라보던 봄옷은 아직 옷장 안에서 잠자고 마음은 겨울 외투처럼 두껍다 무심한 마음은 계절에 대해 참견을 하지 못하겠다 겨울 속에서 밥을 먹고 겨울 속에서 잠을 자지만 달리 기억하는 것은 없다 입춘..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