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여수 금오도) 동백 제 살 찢고 핀 동백 참 태연하다 마디마다 고였던 핏물이 터져 딱지 앉았네 어느새 동백은 가고 길에 떨어진 딱지 붉음, 그대로 내 몸에도 동백이 피려나 아니면 새가 둥지를 틀었는지 어깨 위에 앉은 새 부리로 밤낮없이 쪼아댄다 언제 붉은 딱지 앉으려는지 언젠가는 어깨의 통증..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승기천에서(연수동) 승기천에서 버려진 물이 흐르고 여름이면 역겨운 냄새가 나는 승기천을 따라 길이 생겼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낮은 길 그 길에 봄이 온다 벚꽃 한 짐 개나리 한 움큼 그리고 발등에 올라앉는 꽃 바리바리 등짐을 지고 승기천을 따라오는 봄 바람이 불 때마다 풍기는 썩은 냄새가 무슨 대..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빈집(묵호) 빈집 -묵호항 동해 바다에는 항상 물고기가 살 거라고 생각을 하지 묵호 바다에는 오징어가 살 거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하지만 나는 바닷속 어디쯤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는 게 맞지 물고기를 따라가 본 적은 없었으니까 묵호 사람들은 전부 바닷가에서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지 묵호 사람들은 오징어를 잡으며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지 바닷가 마을을 갔었지 바다가 훤히 보이는 비탈길을 올라갔었지 비탈을 가득채운 마을은 빈집 투성이었어 오징어 말리는 집이 없었어 나의 오십년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었어 저 바다도 언젠가 텅 비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푸른빛이 모두 바래고 소금만 남으면 어떻게 하지? 梁該憬 2013. 3. 2. 묵호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다시 바람 속에서(제왕산) 다시 바람 속에서 억센 바람이 영하 18도를 흔든다 대관령이야 늘 바람투성이 덕택에 좁쌀 같은 눈이 오래 견디겠다 밟고 가는 것마다 소리가 난다 상처의 소리, 그것은 살아있는 소리 살아있는 마음으로 바람 소리보다 더 큰 상처의 소리를 듣는다 오래 견딘다는 것은 상처가 깊어지는 ..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아무것도 아닌 추억(화진포) 아무것도 아닌 추억 오징어잡이 배가 밤마다 반짝이고 눈이 뛰어내리던 부둣가에 명태 배 따는 풍경이 있는 곳, 거진 살다 보니 사십 년도 더 된 기억을 하고 산다 기억하면 무엇하나 살았었지만 기억하는 이름도 없고 엄지발가락에 채이던 신작로 자갈 내가 살던 집은 어디로 갔는지 얼..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눈이 내리고 다음날(팔공산) 눈이 내리고 다음날 밤새 눈이 내렸다 절간으로 오르는 길과 돌무덤을 쌓으러 왔던 길이 지워지고 나뭇가지마다 눈이 한 줌이다 기도하는 일, 사랑하는 일, 지워지는 김에 지난 것들이 모두 지워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빌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은 눈발처럼 가볍게 앉았다가 사라지는 일 ..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수변에서(송도) 저녁새가 되어 강가에 앉았다 어제보다 푸근한 날씨지만 강물은 멈추어 있다 아득히 높은 건물 주인 있는 불빛이 늘어가고 강물 속으로 불빛이 별처럼 모여들지만 얼어버린 강물 때문에 투명하지 못한 불빛들 저 불빛, 저 별 강물에 밤새 잡혀 있겠지 탈출한다기보다 스스로 소멸할 때까..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송년산행(삼각산) 송년산행 12개의 달력이 그림을 바꾸는 동안 수많은 산 이름이 여운을 남기고 갔습니다 산을 닮은 네 마음과 바람을 닮은 내 마음 다른 얼굴과 이름을 가졌지만 우린 공을 들여 퍼즐을 잘 맞추어 나갔습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 조금씩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 웃음소리가 닮았던 우리 ..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도시에서(송도) 도시에서 어릴 적에는 나무가 집보다 높았다 집보다 높은 나무를 보며 자랐다 집보다 많은 나무 숲에서 문풍지 소리 높아지는 밤 나무들 우는 소리 정겹게 살았다 한때 어촌마을이었던 신도시에 갔다 건물, 건물, 건물, 건물, 키 작은 나무 키가 큰 건물은 석양에 이마가 반들거렸다 나무..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
팔영산에서 팔영산에서 길을 가다가 자꾸 뒤돌아 봅니다 항상 뒤돌아보며 걷는 것은 아닙니다 유난히 돌아보고 싶은 날에는 돌아보고 돌아보고 한참을 서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섬과 구름과 산이 섞여서 세상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는 것보다 뒤돌아 보는 일이 이리도 아름다우니..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13.04.29